내가 이혼할 거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. 같이 살고 있었지만 점점 외로워졌고, 인생이 쉽지 않구나.. 라고만 생각했었다. 처음엔 이혼의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다.
아무 연고도 없는 타지에서 살 때는 부부끼리 잘 의지해야 한다. 아내(전처)가 사업을 시작하고 부터 몇달이 지났을까. 점점 늦게 들어오는 경우가 잦아졌다. 일의 특성상 시공팀을 부리고 업무를 잘 시켜야 하는데 점점 그들과 회식하는 경우가 늘어났다. 그때마다 나는 혼자 시간을 보내야 했고 혼자 주변 상점을 돌아다니던 때의 쓸쓸했던 기억때문에 지금도 그 동네는 가고 싶지 않다. 집에 오는 시간이 자정을 넘기는 경우가 많아졌고 점점 새벽 두세시로 연장되고 있었다. 이제 사업을 시작하는 시기이고 시공팀을 잘 관리해야 하니 어쩔 수 없지 이해하려고 했지만 점점 정도가 심해졌다. 한번은 연락도 없이 새벽 네시를 향하고 있어 전화를 했더니 시공팀의 젊은 남자 직원과 둘이 노래방에 있다고 한다. 그 직원이 생일이라 같이 있어줘야 한단다. 나는 절망했고 분노의 말로 집에 들어오라고 한 후 한시간 정도 지나 아내가 귀가했다. 어이 없는 변명을 들으며 다시 절망했다. 앞으로는 자정까지는 들어오는 걸로 약속을 받았다.
너무 외로워서 지인과 친구들이 있는 내 고향으로 이사가자고 했다. 서울과 가까워 위치는 좋지만 아내의 사업장에서는 지금보다 멀어진다. 당연히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답변이 온다. 자기는 사업장 근처에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얻을테니 주말부부를 하자고 한다. 처음엔 농담인것 같았는데 선물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처럼 기대하는 눈빛과 말투로 아내의 속마음이 새어나온 걸 느꼈다.
티비에서 이혼 후 재산 분할하는 얘기가 나왔는데 갑자기 아내가 애교 섞인 말로 묻는다. "자기는 맘이 넓으니까 우리 이혼하게 되면 재산 다 나한테 줄거지?" 당연히 농담이겠거니 하고 "아니. 한푼도 안 주고 쫓아낼거야" 라고 말했던게 이혼 후 한달 쯤인가 지나 생각났다.
아내가 술이 취해 밤늦게 들어올때면 비꼬는 말투로 나에게 시비 거는 경우가 많아졌다. 대꾸하는 것도 화가 나서 그냥 씻고 자라고 해도 비꼬는 말은 점점 심해진다. 내 목소리가 높아지고 결국 억눌린 큰소리가 나오게 된다. 뭔가 어색해서 봤더니 핸드폰으로 녹음을 하고 있었다. 들키고 나서 이해 못할 답을 한다. 내 결혼 생활이 어떻게 될 수도 있겠다는 직감이 든다.
그리고 두달 후인가 내 입에서 이혼이란 말이 나오게 만드는 제안을 듣고 결국 맘을 굳히게 된다. 2년이 다되가는 지금도 아내가 이혼을 원했던 진짜 이유는 알지 못한다. 올 봄에 다른 일 때문에 만났을 때 물었더니 자기도 이유를 모르겠단다. 짐작 가는 게 몇 개 있지만 확신은 없다. 그냥 모르고 살아야 할 것 같다.